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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려고 부모님이랑 콘서트보고 나서는 본인이 팬된다는 훈아형의 전설의 인터뷰를 보면서 인상깊은 내용을 좀 추려봤읍니답. 자신감과 소신, 본인의 가치관 등 읽을 수록 존멋인 것이애오 >.<  

 

특별하지 않은 아주 보통 사람, 프로페셔널 나훈아

나훈아: 제가 무슨 얘깃거리가 됩니까?

기자: 되고도 남지요. 아주 특별한 분 아닙니까?


나훈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보통 사람입니다
기자: 예를 들면...

나훈아: 지방에 공연을 가면 가수들이 거의 연습을 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밴드가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연습을 합니다. 그러면 밴드들이 "다른 가수들은 악보만 갖다주고 그냥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럼 그냥 하는데예" 그래요. 그럼 나는 이럽니다. "이 사람들아, 그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해서 그래도 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연습을 해야지!" 그러면 아무 소리도 못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악보만 읽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건 고등학교 밴드부도 할 수 있어요.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어야지 프로페셔널입니다. 진정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고 연습해야 합니다.
 
...중략...

 

기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한번도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는데 나훈아씨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나훈아: 그게 무서운 겁니다. 전 프로지 않습니까? 프로는 프로 값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을 받고 노래합니다. 받은 값을 해야지요. 값은 그냥 안 나옵니다. 피나게 연습을 해야만 특별한 게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 노래를 듣는 분들한테 감동을 줘야 합니다. 노래 한 곡이 대개 3분간 나가는데, 이 3분 안에 감동을 주려면 참말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로트계의 전환점, 꺽기 달인 나훈아

기자: 이미자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훈아: 아이구, 그런 분이 우리 대한민국에 뽕짝 가수로 계시다는 걸 생각하면 참 행복하죠. 그런 분들이 안 계시면 한국의 노래가 정리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부르는 뽕짝, 그건 그냥 이미자 스타일이라야 합니다. 남자가 부르는 뽕짝, 그건 그냥 나훈아 닮아야 합니다, 하하…. 뒤집고, 꺾고 해 쌓고, 전부 그래 가지 않습니까?
 
기자: 그럼 나훈아 이전엔?
나훈아: 제가 나오기 전엔 뒤집고 꺾고 하는 게 없었습니다. (노래 부른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또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 보면 시들하고…" 이렇게 얌전하게 불렀지요. 저처럼 (노래) "가지 마아오오 가지 마아오오…" 이렇게 꺾는 기 없었어요』
 
기자: 허, 노래를 들으니 그 전과 아주 달라졌군요.
나훈아: 그렇죠, 저부터가 큰 전환점이 됐지요.

나훈아 예명의 의미, 예술하는 느낌 나훈아

기자: 본명(최홍기)이 참 좋은데요. 왜 이름을 바꿨습니까?
나훈아: 노래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최홍기가 그냥 보통 사람 이름 같아서 최훈이라고 할라고 했죠. 그런데 최씨가 영 예술하는 사람의 성 같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좀 기억하기 쉬운 성을 찾은 게 나씨예요. 그담에 '훈'자를 붙이니까 '아'자는 그냥 나오더라구요. 이름이 '훈'이라면 부를 때 '훈아' 카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나훈아가 된 겁니다. 한자로 써 놓고 보니까 기가 막혀요. 어린 아이(兒)가 훈장(勳)을 받는 것 같은 이름이잖아요

 

친구따라 갔다가 가수된, 될 놈 될 나훈아

기자: 그래 어떻게 가수가 되셨어요?
나훈아: 아버지 몰래 한 겁니다. 6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곡가 심형섭씨가 학교 바로 옆 정릉에서 음악학원을 열고 계셨어요. (노래) "물어물어 찾아왔소, 그 님이 계시는 곳에"(임 그리워)를 작곡하신 분입니다. 그 학원에 친구 따라 놀러 다녔는데, 거기 가서 제가 가끔 노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한테 말은 안 하셨지만,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후에 그 분한테 들은 얘긴데, 그때 내가 노래를 너무 잘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손진석 사장님하고 친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이 손 사장님께 얘길 했대요. "어린애가 하나 있는데 이게 아주 쥑인다, 물건이 될 것 같다" 이랬다는 거요. 그러면서 "모른 척하고 한번 와서 보실랍니까?" 이래 됐나 봅니다. 말하자면 선보러 오락칸 거지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거기서 놀러 오라고 해서 갔어요. 갔더니, 그 분(심형섭)이 "노래 한번 해 볼래?" 그래요. "어 좋지!" 뭐 뺄 것도 없어서 노래를 몇 곡 불렀어요. 그러면서 뒤를 보니까 나이 먹은 분들이 두세 분 앉아 계시더라구요.
 
그때 내가 당시 유행하던 「라노비아」도 불렀어요. 그랬더니 손 사장님이 내 노래를 듣고 시쳇말로 그냥 뺑 돌아버린 겁니다. 생긴 것도 시커멓고, 눈썹도 시커먼 놈이, 아, 부르는데, 그기 아닌기라!
 

깡패될 뻔한 불주먹, 다치마와리 나훈아

기자: 만약 가수가 안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나훈아: 죄송합니다. 틀림없이 깡패가 돼서 감방에 드가(들어가) 앉아 있을 깁니다. 제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건달들 마지막 가는 곳이 거기 아입니까? 틀림없을 깁니다
 
기자: 그런 소질은 좀 있으셨던가요?
나훈아: 제가 경찰서에 폭력으로만 일곱 번 드갔다 나왔으니까요. 상대가 전부 깡패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온 깁니다. 일반 시민을 때렸다든가, 내보다 약한 사람을 때렸다면 그냥은 못 나왔겠지요
 
기자: 그래 그런 사람들하고 싸워서 이깁니까?
나훈아: 제가 상당히 빠릅니다. 그리고 좀 셉니다.
 
...중략...

기자: 왼쪽 뺨 위에 있는 그 상처(5cm쯤)가 공연하다 사이다 병에 찍혀서 다친 거라죠?
나훈아: 그때가 72년 6월이었어요.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는데, 누가(金OO·당시 29세) 올라와요. 전 누가 악수하러 올라온 줄 알았습니다. 멋도 모르고 손을 내미는데 그냥 사이다 병 깨진 게 들어오는 겁니다. 그 사람은 노래를 못하게 제 목을 찌를라구 했대요. 그때 목을 찔렸으면 죽었지요. 얼른 피해서 뺨 위에 찍힌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 사이다 병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하고 무대에서 8분을 싸웠습니다.
 
기자: 그 난리가 났는데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었나요?
나훈아: 밑에서는 이걸 쇼로 알고 구경을 한 겁니다. 그땐 「다치마와리」(난투)라고 무대에서 싸우는 연기를 하고 그랬거든요. 박노식씨 같은 분이 그런 연기를 잘했죠. 이게 그런 건 줄 알았던 겁니다. 경찰도 그런 걸로 알고 보고만 있었던 겁니다.
 
기자: 그때 남진씨가 시킨 거다, 아니다 해서 말썽이 많았는데….
나훈아: 남진씨가 시킨 건 아니었어요. 후에 남진씨가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좀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자기를 찾아와서 "나훈아를 죽이겠다"며 횡설수설 하면서 귀찮게 하더래요.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데리고 나가 보내면서 5만원을 줬대요. 그러니까 이 모자란 사람이 "아, 이거 죽이라는 거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별 중에 별, 슈퍼스타 나훈아 

기자: 관리는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겁니까?
나훈아: 별(스타)은 별이어야 합니다. 별은 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안 보여야 합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별은 하늘에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합니다. 빛날려면 항상 닦아야 합니다.
 
내가 저 동네 아저씨 같다면 사람들이 돈 주고 시간 버려 가면서 왜 보러 옵니까. 공짜표 줘도 안 올 겁니다. 참 TV에도 잘 안 보이고, 볼락캐도 방법이 없고, 보고는 싶은데…, 이럴 때 사람들이 보러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스탑니다. 우리는 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기자: 무절제하게 오라는 대로 다 가면 안 되겠군요.
나훈아: 그렇죠! 내가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누가 말해도 설 자리가 아니면 절대 안 섭니다.


기자: 그러면 너무 비싸게 군다고 안 할까요?
나훈아: 욕을 먹어야지요. 미국서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일반대중 가운데 30%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슈퍼스타가 된답니다. 너나 나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라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 30%가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는 욕을 많이 먹습니다. 방송사에서 제일 많이 욕먹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출연 교섭 한번 할래도 더러워서 죽겠다고 그래요.
 
우리 가수 가운데 학벌 좋고 공부 잘하고 노래 잘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이 쇼하면 손님 안 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아주 점잖고, 교양 있는 말만 하고,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수 같잖아요. 그러니까 안 가는 겁니다.
 
뭔지 모르지만 스캔들도 있고, 뭔가 좀 삐딱하게 굴기도 하고, 뭐 하나 할락카면 정신없이 난릴 직여 뿔고, 그러니까, 도대체 저게 뭐야, 한번 가보자,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혹시 돈 많이 안 줘서 안 온다는 소리는 안 듣습니까?
나훈아: 돈 많이 안 주면 안 갑니다. 그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누가 대한민국에서 젤 비싸냐? 제가 젤 비쌉니다. 제가 2등의 열 곱은 더 받습니다.
 
기자: 방송사에 모시려면 한 1억은 내야 합니까?
나훈아: 방송사에선 가수들한테 출연료를 10만∼20만원밖에 안 줍니다. 그건 뭐냐? 내가 출연시켜 주니까 너희들 홍보가 되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는 안 합니다. 저를 출연시킬려면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을 내야 돼요. 큰 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물론 1억이 넘어야지요
 
제 공연을 보고 나서도 사람들이 만족을 하고, 밖에 나가서 자랑을 하게 해야 합니다. 관객들은 최고로 비싼 (보통 15만원) 입장료를 내고 왔지만, 내가 또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주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최고의 입장료를 내고 최고의 무대를 보고 왔다고 자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가수는 이렇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기자: 96년에 있었던 「KBS 설날 특집 나훈아 빅쇼」에선 다이아몬드 550개가 박힌 10억짜리 의상을 입고 등장하셨는데, 너무 호화롭지 않았나요?
나훈아: 이건 꿈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해야 합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자랑을 해야 합니다. "야, 나훈아가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나왔어. 너 그거 봤냐? 야, 대단하더라!"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재산 사회 환원 계획, 묻지마 나훈아

기자: 그러면,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나훈아씨가 최종적으로 하려고 하는 건 뭡니까?
나훈아: 제가 얘기를 해드릴 테니 더 이상은 묻지 마십시오. 제 큰애가 곧 대학에 들어가는데요, 내가 그랬어요. "공부는 네가 원하는 대로 시켜주마. 공부가 끝난 다음에는 너한테는 1원도 못 준다. 왜냐? 이건 내 돈이다. 내 돈은 무슨 돈이냐? 사회에서 날 사랑해 준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번 돈이다. 이걸 전부 사회에 주고 죽을 거다" 그랬어요.
 
더 묻지는 마십시오. 지금도 사회에 고맙다는 생각으로 내가 할 일을 생각하고 있고 또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더 묻진 마십시오. 이건 아무도 모르니까요.

 

여자는 돈없이 못산다, 남자 나훈아

기자: 그런데 아까 스캔들 말씀을 하셨는데, 김지미씨하고 73년(나훈아씨가 26세 때)부터 81년(34세)까지 8년간 함께 계셨는데….
나훈아: 저는 그때 그 여인하고 만나서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여인은 내 인생에 참 필요했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까지 평탄대로를 걸어오던 내가 덜커덩 그 일이 있고부터 이것저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또 모든 것이 힘들게 됐죠. 그런 걸 겪으면서 제가 어른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겁니다

...중략...


기자: 헤어질 때 돈이 한푼도 없이 나왔을 거 아닙니까?
나훈아: 한푼이 아니라 숫가락 젓가락 하나도 없이 나왔습니다. 있는 돈 다 주고 나왔죠. 그러고도 더 주고 나왔어요. 그게 남자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자: 그게 무슨 얘기죠?
나훈아: 그때 서울 청량리 맘모스 카바레에서 한 달에 1억원씩 받기로 하고 한 달치를 먼저 받아서, 3분의 2는 김지미씨한테 주고 3분의 1로는 전세로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를 얻었습니다.

 

소신있는 정치발언, 고소공포증 나훈아

기자: 그런데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까?
나훈아: 아닙니다. 이주일씨가 국회의원 나갈 때, 사실은 당시 여당에서 프로포즈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1월이었는데 애들하고 스키장에 가 있었습니다. 아무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고 가 있었는데 우리 회사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좀 높은 데서 연락이 왔다는 겁니다.
 
"높은 데 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끊어!" 그러고 열흘 후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들어보니 국회의원 하라는 겁니다. 그때 여당 당직자가 저녁약속을 하자고 해서 내가 전화로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했더니 그쪽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좀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요. 그 말 듣고 제가 당장 이랬어요. "여보시오, 내가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한 가지만 물어 봅시다. <울긴 왜 울어>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울긴 왜 울어>를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그거야 나선생이 최고로 잘 부르죠", "그러면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참 미워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 않고, "아, 저놈 인기 있으니 내보내면 당선되겠다. 그럼 우리 당이 한 석 더 차지한다"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국회가 왜 저 모양입니까? 돈 좀 있으면 국회의원 할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 안에 국회의원 자격이 있어서 앉아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국회의원은 정말 엘리트가 해야 합니다. 잘 배우고, 사고가 똑바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은, 최고 비싼 나훈아

기자: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뭡니까?
나훈아: 조용히 노래를 접는 일입니다.
 
기자:접 다니?
나훈아: 노래를 접고, 편하게 살면서 책도 좀 읽고, 그림도 좀 그리고, 그러면서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겁니다.
 
기자: 왜 벌써 그만둘 생각을 합니까?
나훈아: 그 동안에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지요. 말하자면 최고로 비싸게 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게 통했는데, 내가 "내 노래 들을라면 얼마 내!" 했을 때, 그걸 받아 주면 되지만 만약에 "그래? 그럼 그만둬!" 하면 나는 뭐가 됩니까? 그런 날이 기어코 옵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둬야지요.

 

인터뷰 원문: 월간조선 2002년 1월호 오효진의 인간탐험, 가장 비싼 가수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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